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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왜 읽기를 해야하는가 - 두번째 : 읽기를 잘하는 당신이 영어를 못하는 이유

Circles 2017. 7. 27. 08:36

정답은 읽기를 제대로 못해서 그렇습니다.

첫줄이 황당하게 들리셨다면 죄송합니다. 제가 언어의 공부법에서 읽기와 쓰기를 강조할 때마다 한국인은 영문법을 비롯해 읽기와 쓰기 모두 다 잘하는데 말하기를 못하는 거란 반론을 수없이 들어왔습니다. 실제로 제가 예전에 썼던 글에 달렸던 댓글 하나를 예시로 재구성해보았습니다.

"저도 미국에서 살아봤어요. 대부분 외국에서 유학중인 학생들은 읽기, 쓰기 등 시험에 관련된 부분에만 특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스스로가 충분히 말하거나 들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듣기와 말하기 실력이 늘지 않던데요. 미국인 친구들이 동양계 사람과 친해지기 어려워했던 이유가 바로 읽기 쓰기에 비해서 듣기 말하기가 안된다는 이유가 많았어요. 읽기와 쓰기만으로는 절대로 듣기와 말하기가 늘 수 없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어를 읽고 쓰는 것에 어느정도 자신감을 가진 B1 집단에 속하고, 그 중 상당수가 위와 같은 생각을 합니다. 자, 이제 이 집단에 속한 분들께서 기분 나쁘실 것을 각오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분들이 듣기나 말하기를 못하는 이유는 제가 볼 때 간단합니다. 읽기와 쓰기의 수준이 낮기 때문이에요. 저는 B1집단이 듣기와 말하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을만큼 충분한 수준의 독해능력이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이코노미스트지를 분당 천단어의 속도로 읽을 수 있고, 기사당 모르는 단어의 숫자가 한두개에 불과하며, 각각의 기사에 관한 문제를 20개 가량 풀었을 때 18개 이상의 정답을 맞춘다면 저는 한달만에 당신을 듣기의 달인으로 만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육개월을 준다면 쓰기의 달인으로 만들어드릴 수 있고, 일년을 주면 말하기까지 완벽하게 소화해내실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이게 제가 생각할 때 자신이 "읽기는 잘하는데 나머지를 못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대략적인 기준입니다. 실제로 이정도의 독해가 가능한 분이 언어의 나머지 부분을 못할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요.

성인의 모든 외국어 공부는 읽기로 시작해서 듣기를 거치고 쓰기를 거쳐서 말하기로 마무리됩니다. 읽어야 들을 수 있고, 써야 말할 수 있거든요.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 학창시절 내내 영어 문법과 독해를 공부해온 이유입니다. 나머지 공부법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읽기가 되지 않으면 다른 것을 시작할 수가 없습니다.

알지 못하는 단어를 듣고 익숙하지 않은 문장구조를 반복해서 듣는다고 그것이 언젠가 들릴까요? 그게 가능하다면 앞서 말했듯이 알 자지라 방송을 2년간 듣는 것만으로도 다들 아랍어를 할 수 있어야겠죠. 이미 어느정도의 독해능력이 있어서 문장을 들었을 때 모르는 한 두 단어의 의미를 유추할 수 있는(context) 경우를 제외하면 모르는 단어는 끝까지 들리지 않고, 읽었을 때 어떤 내용인지 충분히 파악되지 않는 주제에 대해서는 아무리 듣는다해도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읽어서 전부 이해할 수 있다한들 말하는 속도보다 훨씬 느리게 읽으면 들리지 않고요. 듣기의 경우, 언어 특유의 인토네이션이나 음율같은 것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많이 들어야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읽기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 충분한 문법적 이해와 높은 어휘수준을 가졌다면 - 사실 1~4주일만에 듣기는 거의 정복이 가능합니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듣기를 하기 힘든 건 읽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죠. 문장을 읽고 자체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이 있다면 음운에 익숙해지는 훈련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으니까요.

쓰기와 말하기는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것을 꺼내는 작업입니다. 머릿속에 어휘와 문장구조,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없는데 어떻게 글을 쓰고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충분한 읽기가 뒷받침되지 않는 사람도 계속해서 반복하다보면 인삿말정도는 유창하게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인삿말은 결국 인삿말에 불과해요. 읽기를 충분히 하지 않아도 영어권 사람들과 말하기만 계속 연습하면(immersion) 말하기 실력이 늘어난다고 믿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러한 방법으로 영어로 특정 주제에 대한 에세이를 쓸 수 있는 글쓰기 실력이나 토론을 할만한 회화실력을 갖추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야할테고, 심지어 영영 그런 실력을 갖추지 못한 채 음식의 주문이나 인삿말 정도의 단순한 회화에서 더이상 나아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목표가 "해외 여행을 하기에 적당한 수준의 영어(A1~A2)"라면, 음식의 주문이나 단순한 인삿말 정도의 반복학습만으로도 충분할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영어라는 언어를 통해 특정 분야의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B2+) 그보다 더욱 많은 준비를 해야합니다. 그리고 그 기반이 바로 읽기죠. 한국인들이 읽기와 쓰기만 해서 듣기와 말하기를 못한다는 많은 이들의 통상적인 믿음과 달리, 듣기와 말하기의 향상을 비약적인 속도로 단축시켜주는 것이 바로 읽기와 쓰기입니다. 다음 글에서 대략적으로 어떻게 읽기와 쓰기가 듣기와 말하기에 도움이 되는지 구체적인 공부방법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