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여러분께 대략적이나마 영어 공부법을 소개할 수 있게 되어서 기뻐요. 아래에 기술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어떤 방식의 공부가 이루어져야하는 가에 대한 얼개에 불과하지만, 간단한만큼 제가 말씀드리는 공부법의 핵심으로 보셔도 됩니다. 차후 각 분야에 대해서 상세히 다룰 예정이니 지금은 전체적인 공부방법에 대해 한번 가볍게 훑어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읽기의 공부법 - 가장 이상적인 것은 자신의 전공이나 업무분야에 관련된 책이나 자료, 논문을 영어로 읽는 것입니다. 그 외에 기본적인 영어실력을 늘리고 싶다면 신문기사를 읽는 것을 추천하고, 그 다음으로 추천하는 것이 책입니다. 읽으면서 단어와 구문의 정리를 함께 하는 것이 좋습니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꼼꼼히 공부하며 읽는 글과 많은 양의 글을 읽는 훈련을 하는 것이 좋겠지만, 시간이 충분치 않다면 꼼꼼히 읽는 쪽을 택하세요.

​듣기의 공부법 - 자신이 읽는 것을 듣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자신의 전문분야에 관련된 강의를 듣거나, 신문을 읽는다면 관련 뉴스를 보는 것이 좋아요. 이런 경우 강의 내용이나 뉴스의 스크립트를 구할 수 있으면 더욱 좋겠죠. 일부 신문에서는 직접 읽은 오디오 파일을 배포하기도 합니다. 영미권의 책을 읽는다면 손쉽게 오디오북을 구하실 수 있을겁니다. 활자를 읽고 완전히 이해한 후, 편안하게 들릴 때까지 반복듣기를 합니다.

​쓰기의 공부법 - 자신이 읽고 듣는 것을 쓰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읽는 텍스트를 문단마다, 혹은 챕터마다 자신의 언어로(paraphrase) 요약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요약은 글의 정독을 가능하게 하고 글의 구조를 이해하게 하며 익힌 단어와 구문을 활용할 기회를 주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점차적으로 자신의 언어를 활용하는 것에 익숙해진다면 관련 주제와 파생된 주제에 대한 글쓰기를 해볼 수 있습니다.

​말하기의 공부법 - 자신이 읽고, 듣고, 써본 주제에 대해 말하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자신이 쓴 요약본을 소리내어 크게 읽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요약을 반복읽기해서 입에 익숙해지게 하는 훈련을 한 다음, 쓴 글을 보지 않고 다른 이에게 그 사건이나 이야기에 대해 들려주는 상상을 하며 말해봅니다. 쓰기에 능숙해져서 다양한 글을 쓸 수 있게 되면 말하기의 주제와 방법 역시 다양해집니다.

읽기를 하지 않으면 다른 분야의 공부를 시작할 수 없기에, 이 모든 공부법의 기본은 읽기입니다. 그러나 읽기의 중요성과는 별개로 읽기'만' 하는 것은 언어의 향상을 목적으로 할 때 매우 비효율적입니다. 읽기, 듣기, 쓰기, 말하기는 유기적 관계이기에 자신이 읽은 주제를 듣고, 쓰고, 말하는 복합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언어공부에서 시간대비 효율은 사실 동등하지 않습니다. 저는 언어의 공부시간을 문법과 듣기는 0.5배, 읽기는 1배, 쓰기와 말하기를 2배로 계산합니다. 읽는 것과 듣는 것은 수동적인 공부법이며 말하기와 쓰기는 그에 비해 능동적인 공부법이기 때문이죠.

멍하니 미국/영국 드라마를 본다고해서 저는 그걸 공부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영어로 된 소설을 출퇴근 시간에 읽는다고 영어공부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요. 듣기와 읽기는 언어에서 매우 수동적인 부분이기에 의식적으로 쓰기와 말하기를 병행하여 능동적인 공부를 하지 않으면 향상 속도가 굉장히 느립니다. 그렇다고 해서 만약 '능동적인 부분인 쓰기와 말하기만 열심히 공부하면 될 게 아닌가'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그 분은 아마 대수와 삼각함수를 배우지 않아도 미적분 문제를 풀 수 있는 놀라운 재능을 가진 분일겁니다. 인간의 학습 기제는 정직합니다. 입력정보(input)가 존재해야 출력(output)을 기대할 수 있죠. 무언가를 읽고 들어서 머릿속에 집어넣지 않으면 당연히 그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위에서 설명한 각각의 공부법을 읽기와 연계시킨 병행 공부법 예시를 표로 만들어보았습니다.


병행 공부법의 예시


병행 공부 분야

예시

읽기/듣기

  • 책을 오디오 북과 함께 듣거나
  • 스크립트가 제공되는 뉴스를 읽고 보거나
  • 드라마의 스크립트를 읽고 보거나
  • 관련 강의를 들으며 교과서 등의 전문서적 또는 논문을 읽는다

읽기/듣기/말하기

  • 텍스트를 읽으면서 듣고 자신이 따라해보거나
  • 쉐도잉을 한다

읽기/쓰기

  • 책을 읽으면서 문단 혹은 챕터마다 요약하거나
  • 책을 읽고 감상문을 쓰거나
  • 신문기사를 문단 혹은 기사마다 요약하거나
  • 신문기사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쓰거나
  • 연구주제에 대한 전문서적과 논문을 읽고 요약하거나
  • 연구주제에 대한 자료를 읽고 레포트나 논문을 쓴다

읽기/쓰기/말하기

  • 읽고 쓴 내용을 발표준비하듯 큰 소리로 여러번 반복해서 읽어서 외우고
  • 외운 내용에 대해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한다

읽기/듣기/쓰기/말하기

  • 이미 읽은 텍스트를 보지 않고 들으며 요약한 뒤 매끄럽게 다듬어 큰 소리로 읽고 외운다

읽기/말하기

  • 불가능하진 않지만 비효율적이다


다음 글에서는 이제 이 공부법을 어떻게 각자의 목적에 맞도록 적용하는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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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읽기를 제대로 못해서 그렇습니다.

첫줄이 황당하게 들리셨다면 죄송합니다. 제가 언어의 공부법에서 읽기와 쓰기를 강조할 때마다 한국인은 영문법을 비롯해 읽기와 쓰기 모두 다 잘하는데 말하기를 못하는 거란 반론을 수없이 들어왔습니다. 실제로 제가 예전에 썼던 글에 달렸던 댓글 하나를 예시로 재구성해보았습니다.

"저도 미국에서 살아봤어요. 대부분 외국에서 유학중인 학생들은 읽기, 쓰기 등 시험에 관련된 부분에만 특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스스로가 충분히 말하거나 들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듣기와 말하기 실력이 늘지 않던데요. 미국인 친구들이 동양계 사람과 친해지기 어려워했던 이유가 바로 읽기 쓰기에 비해서 듣기 말하기가 안된다는 이유가 많았어요. 읽기와 쓰기만으로는 절대로 듣기와 말하기가 늘 수 없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어를 읽고 쓰는 것에 어느정도 자신감을 가진 B1 집단에 속하고, 그 중 상당수가 위와 같은 생각을 합니다. 자, 이제 이 집단에 속한 분들께서 기분 나쁘실 것을 각오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분들이 듣기나 말하기를 못하는 이유는 제가 볼 때 간단합니다. 읽기와 쓰기의 수준이 낮기 때문이에요. 저는 B1집단이 듣기와 말하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을만큼 충분한 수준의 독해능력이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이코노미스트지를 분당 천단어의 속도로 읽을 수 있고, 기사당 모르는 단어의 숫자가 한두개에 불과하며, 각각의 기사에 관한 문제를 20개 가량 풀었을 때 18개 이상의 정답을 맞춘다면 저는 한달만에 당신을 듣기의 달인으로 만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육개월을 준다면 쓰기의 달인으로 만들어드릴 수 있고, 일년을 주면 말하기까지 완벽하게 소화해내실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이게 제가 생각할 때 자신이 "읽기는 잘하는데 나머지를 못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대략적인 기준입니다. 실제로 이정도의 독해가 가능한 분이 언어의 나머지 부분을 못할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요.

성인의 모든 외국어 공부는 읽기로 시작해서 듣기를 거치고 쓰기를 거쳐서 말하기로 마무리됩니다. 읽어야 들을 수 있고, 써야 말할 수 있거든요.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 학창시절 내내 영어 문법과 독해를 공부해온 이유입니다. 나머지 공부법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읽기가 되지 않으면 다른 것을 시작할 수가 없습니다.

알지 못하는 단어를 듣고 익숙하지 않은 문장구조를 반복해서 듣는다고 그것이 언젠가 들릴까요? 그게 가능하다면 앞서 말했듯이 알 자지라 방송을 2년간 듣는 것만으로도 다들 아랍어를 할 수 있어야겠죠. 이미 어느정도의 독해능력이 있어서 문장을 들었을 때 모르는 한 두 단어의 의미를 유추할 수 있는(context) 경우를 제외하면 모르는 단어는 끝까지 들리지 않고, 읽었을 때 어떤 내용인지 충분히 파악되지 않는 주제에 대해서는 아무리 듣는다해도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읽어서 전부 이해할 수 있다한들 말하는 속도보다 훨씬 느리게 읽으면 들리지 않고요. 듣기의 경우, 언어 특유의 인토네이션이나 음율같은 것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많이 들어야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읽기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 충분한 문법적 이해와 높은 어휘수준을 가졌다면 - 사실 1~4주일만에 듣기는 거의 정복이 가능합니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듣기를 하기 힘든 건 읽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죠. 문장을 읽고 자체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이 있다면 음운에 익숙해지는 훈련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으니까요.

쓰기와 말하기는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것을 꺼내는 작업입니다. 머릿속에 어휘와 문장구조,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없는데 어떻게 글을 쓰고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충분한 읽기가 뒷받침되지 않는 사람도 계속해서 반복하다보면 인삿말정도는 유창하게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인삿말은 결국 인삿말에 불과해요. 읽기를 충분히 하지 않아도 영어권 사람들과 말하기만 계속 연습하면(immersion) 말하기 실력이 늘어난다고 믿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러한 방법으로 영어로 특정 주제에 대한 에세이를 쓸 수 있는 글쓰기 실력이나 토론을 할만한 회화실력을 갖추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야할테고, 심지어 영영 그런 실력을 갖추지 못한 채 음식의 주문이나 인삿말 정도의 단순한 회화에서 더이상 나아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목표가 "해외 여행을 하기에 적당한 수준의 영어(A1~A2)"라면, 음식의 주문이나 단순한 인삿말 정도의 반복학습만으로도 충분할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영어라는 언어를 통해 특정 분야의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B2+) 그보다 더욱 많은 준비를 해야합니다. 그리고 그 기반이 바로 읽기죠. 한국인들이 읽기와 쓰기만 해서 듣기와 말하기를 못한다는 많은 이들의 통상적인 믿음과 달리, 듣기와 말하기의 향상을 비약적인 속도로 단축시켜주는 것이 바로 읽기와 쓰기입니다. 다음 글에서 대략적으로 어떻게 읽기와 쓰기가 듣기와 말하기에 도움이 되는지 구체적인 공부방법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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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성인이 된 이후로는 언어 학습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말합니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절대로 다른 언어를 완벽히 익히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맞는 말입니다. 성장과정 중 언어 뿐만 아니라 학습능력 자체가 극대화되는 특정 시기가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영어교육학에서는 일정 나이(10~14세) 이후로는 외국어의 습득이 확실히 느려지고, 그렇기에 언어공부를 위한 노력이 곱절로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실망하지 마세요, 오히려 성인이기에 언어학습에서 유리한 점도 분명 있습니다.

다들 주지하다시피 언어는 읽기, 듣기, 쓰기, 말하기의 연동입니다. 이 모든 분야가 골고루 발달되어야 하겠지만, 새로운 언어를 접하고 배우기 시작할 때 무엇부터 시작해야하는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분분한 실정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아이들이 언어를 학습하는 방식, 즉 듣기를 우선적으로 중시하여 공부해야한다고 여기시더군요. 과연 그럴까요? 안타깝게도 언어인지학에서는 12~13살이 지난 이후에 듣는 것만으로는 언어를 학습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한국어를 포함한 다른 언어에 노출되는 일 없이 아랍어 라디오를 여러분이 2년간 매일 하루종일 꾸준히 들었다고 가정해봅시다. 여러분은 2년 뒤, 아랍어를 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불가능할 겁니다. 알 자지라 방송을 2년간 매일 꾸준히 본다면 자주 나오는 몇 단어의 의미 정도는 추측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TV 방송은 이미지가 함께 나오기 때문에 조금 더 학습에 유리할테니까요. 그러나 여전히 가시적인 학습 효과가 나타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사물과 행위를 보고 듣는 것으로 언어를 학습합니다. 소리와 이미지의 연동이라고 볼 수 있겠죠. 이것이 듣기가 선행 가능한 유일한 언어학습 방법입니다. 아이들이 책상이란 단어를 배울 때 책상이라는 물건이나 사진을 보면서 의미를 이미지로 기억하는거죠. 말하기와 듣기는 아마 문자 이전에 존재했을테고, 아이는 문자를 이해하지 못하니 이미지로 말하기와 듣기를 먼저 배웁니다. 어느 쪽이든간 문자로서 의미를 학습할 수 없는 경우에 한정되어있죠. 아이는 생후 몇 년간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모든 시간을 부모와의 상호교류 및 주변 정보를 통해 듣기 학습을 하고 있습니다. 성인으로서 생업을 내팽개치고 몇 년간 하루종일 매일같이 부모처럼 영어로 말하며 생활해 줄 사람과 사는 것이 아니라면 듣기만을 통한 학습은 효율성이 매우 떨어집니다. 설령 그렇게 학습이 가능하다한들 아이들의 언어 수준은 매우 빈약합니다. 10살짜리 아이에게 신문의 정치면이나 경제면을 보여주면서 읽고 설명해보라고 하면 그 아이는 얼만큼 설명을 할 수 있을까요? 10여년을 아이가 학습하는 방법으로 공부를 한다고 해도 성인에게 쓸모있는 수준의 언어를 구사하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저는 성인이 아이에 비해 언어학습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부분이 문자로 학습이 가능한 높은 지적능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듣기로 언어학습을 시작하여 말하기로 학습이 이어지는 것은 위에서 말했다시피 소리와 이미지의 연동으로 학습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에 문자를 익히는 읽기를 배우게 되고, 쓰기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유년기를 거쳐온 성인은 처음부터 문자를 통한 외국어 학습이 가능합니다. 굳이 사물을 보거나 행위를 관찰하여 언어와 매치를 시키는 학습법이 아니라, 이미 이미지에 대한 언어가 확립되어 있기 때문에 읽는 행위만을 통해서도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정보를 학습할 수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성인의 언어 학습 방법은 읽기로 시작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듣기가 읽기보다 선행되어야한다는 공부법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듣기는 읽기와 병행되어야하고, 굳이 둘 중에 먼저 해야하는 것을 선택한다면 읽기를 꼽을겁니다. 성인에겐 읽기가 듣기보다 쉬울 수밖에 없고, 쉬운 것부터 하는 것이 언제나 학습의 효율이 높다고 믿거든요. 저는 아이와 성인이 언어를 배우는 방식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보고, 성인으로써 취할 수 있는 어드밴티지를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저는 아이가 반드시 언어를 학습하기에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특히 높은 수준의 언어로 갈수록 더욱 지적능력이 높은 성인이 유리하다고 보고요. 그것이 우리나라 영어 교육과정에서 독해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 이유고, 많은 한국인들이 읽기, 듣기, 쓰기, 말하기 중 영어를 읽는 것에 제일 큰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죠.

그렇다면 많은 이들이 영어를 공부하는 것에 있어서 읽는 것만큼은 자신있어 하는데 왜 여전히 영어를 어려워하는 걸까요? 역시 읽기만 공부하고 다른 분야의 공부를 소홀히했기 때문일까요? 다음 글에서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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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서도호 : 집 속의 집



앞서 한국어와 영어를 가족에 비유하여 그 차이점에 대해 말했듯, 이번에는 건축에 비유해보겠습니다. 언어공부에서 문법은 건물의 설계도면과 같은 거라는 글을 본 적이 있어요. 읽으면서 매우 공감했던만큼 여러분과도 나누고자 합니다.

평소에 접하지 못해본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아주 복잡하고 큰 건물이 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설계도면 없이 건물에 바로 들어가서 헤메며 이 건물의 구조를 익히는 것은 아주 힘들겠죠. 미닫이문만 있는 집에 살다가 여닫이문으로 지어진 집에 가면 문이나 제대로 열 수 있겠어요? 비슷한 건축양식으로 된 집에서 살다온 사람이라면 바로 들어간다고 해도 평소에 접하던 건축양식이다 보니 아 이런 구조겠거니 대충 찍어도 맞는게 대부분일텐데 말예요.

이 건물의 설계도면을 누군가가 손에 쥐어준다면 어떨까요? 설계도면을 보면 일단 들어가지 않아도 건물의 구조가 한 눈에 보이겠죠. 어떤 것들이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연결되어있고, 이런 구조가 왜 사용되었는지 이해하는 것에 도움을 줄 겁니다. 그렇지만 당장 설계도면을 눈으로 봤다고해서 그것만으로 실제 건물 전체의 구조와 내부를 완벽하게 상상할 수 있을까요? 결국은 건물 내부에 들어가서 설계도면을 가이드 삼아 열심히 돌아다녀봐야 비로소 건물에 대해서 알고있다고 말할 수 있고 자력으로 건물 내부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영어를 바라보는 비영어권 유럽인들의 시선은 그들이 평소에 살던 건물을 지은 똑같은 건축가가 지은 다른 건물에 들어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언어 자체가 매우 흡사하므로 문법 대충 삽십분에서 한시간쯤 설렁설렁 공부하고 열시간 정도 듣고 말하고 읽고 쓰고 매일하면 자연스럽게 언어를 쉽게 익히게 되는거죠. 한국어 화자인 우리는 그와 반대로 생전 처음보는 건축양식을 접하고 있는 겁니다. 설계도면을 들고 보지 않으면 들어가서 헤메는 시간이 유럽인들에 비해 몇 배는 될거예요. 그렇기에 우리는 설계도면을 보는 법에 대해 먼저 배우죠. 그게 바로 문법입니다.

건물 앞에 선 우리에게 주어진 미션은 건물의 구조와 내부에 대해서 이해하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겁니다. 그렇지만 무작정 들어가면 계속 헤매기만 할테니 치트키 삼아 설계도를 일단 보는거고요. 그러나 위에서 말했다시피 설계도면'만' 본다면 미션 클리어는 꿈에 불과합니다. 설계도면만 아무리봐서 뭘 얼마나 알 수 있겠어요, 건물 외벽의 색깔도 모를텐데요. 설계도면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건물을 직접 접하고, 들어가고, 눈으로 보고, 헤메고, 구조를 봐야만 하겠죠. 영어공부에서의 문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문법책만 봐서는 문법을 결코 이해할 수 없어요. 그건 영문법의 아주아주아주아주 기초단계인 뼈대만 간신히 세운거거든요. 문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읽기와 쓰기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문법에 대한 이해가 피부로 다가오게 되는거죠.

매일 잠깐씩 문법에 대한 설명을 읽고 연습문제를 눈으로 풀어보는 것으로 문법의 뼈대를 얼른 세우고 실제 문법에 대한 공부는 글을 많이 읽는 걸로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제 글에서 지겹도록 읽게 되시겠지만 읽기는 영어공부의 궁극적인 뼈대이자 기반입니다. 기타 듣기, 쓰기, 말하기를 병행하면 물론 더욱 좋겠지만, 그래도 기본은 읽기입니다. 성인은 더이상 듣는 것으로 언어 공부를 시작할 수 없거든요. 자연스럽게 자신이 속한 수준의 언어문형을 익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읽기입니다. 문법책을 뒤적거리는 것으로 영어의 기본 구조를 익혔다면, 그 구조의 실제적 사용법을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몸 속에 "때려넣어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영문법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라는 건 영어를 영어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영문법을 이해한 사람은 글을 읽을 때 번역하거나 문장의 구조를 일일히 줄을 그어가며 문법적으로 분해하고 있지 않으니까요. 설계도면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건물도 다 돌아다녀봐서 눈감으면 건물구조를 다 상상할 수 있는데 뭐하러 설계도면을 아직도 꽉 붙들고 건물에 대해 말해보라고 하면 설계도면을 흘끔흘끔 보겠어요.

설계도면만 봐서는 이해할 수 없던 것들도 실제로 돌아다니다보면 이 기호가 이런 기능을 가진 것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법 공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기초 문법의 뼈대를 세우기 위해 읽는 문법책을 정독할 필요없이 설렁설렁 읽으라고 한 것은, 기타 읽기와 쓰기 공부가 병행되어 영문법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처음에 이해가 가지 않아서 대충 읽고 넘겼던 부분도 나중에 다시 읽게되었을 때는 이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설계도면을 뚫어져라 몇시간동안 노려보는 것보다 때로 건물을 한바퀴 도는 것만으로도 한순간에 이해되는 것들이 있으니까요. 문법책의 어려운 부분을 굳이 이해하려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책상 앞에 앉아 답지를 뒤적이며 문법책의 연습문제를 잔뜩 풀지 않아도 괜찮고요. 읽기를 반복하며 다시 같은 문법책을 펼쳤을 때, 그전에는 이해가 가지 않던 것들이 갑자기 이해되는 날이 올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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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 Minna Sundberg : Language Tree



일단 영문법의 공부방법을 먼저 설명하겠습니다.

1. 문법에 대한 설명이 적고 연습문제가 많은 영문법 책을 구매합니다.
2. 매일 한 단원씩 대충 술술 읽고 눈으로 연습문제를 슬슬 풉니다.
3. 향후 설명할 읽기, 듣기, 쓰기, 말하기 공부를 병행하며 반복합니다.


어떤가요, 쉽죠? 안타깝게도 향후 소개할 공부방법들은 이만큼 간단하지 않겠지만, 지금은 기뻐하셔도 좋습니다. 그렇다고 겁먹지 말아주세요, 엄청나게 어려운 공부법을 소개할 것도 아니니까요.

이 공부법을 소개할 때마다 많은 분들께 "역시 문법 공부는 별로 하지 않아도 괜찮은 거군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네, 저는 문법 공부를 굳이 열심히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영문법에 대해 결코 잘 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저보다 영문법에 대해 잘 아는 분들은 여기 많이 계시리라 믿고요. 국문법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릅니다. 중학교 국어시간에 한국어의 형용사와 동사 구분이 너무 어려워서 괴로워했던 기억이 아직도 나요. 한 외국인이 한국어에서는 시간에서 숫자를 말하는 방법이(수관형사가 단위성 의존 명사와 함께 쓰일 때) 왜그렇게 이상하냐고 물어볼 때까지 저는 그게 이상한줄도 모르고 살았어요.

영문법에 대해서는 앞서 설명드린 허술한 공부 방법밖에 추천할 것이 없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제 자신도 영문법에 정통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법은 언어를 배우는데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문법 공부를 열심히 하지 말라면서 정작 문법은 중요하다는 상반된 이야기를 하다니, 이상하죠? 그것은 제가 생각하는 영문법의 범위가 일반적으로 한국 내에서 통용되는 인식과 조금 다르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영문법을 익힌다는 것을 문법 용어와 용례를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반면, 저는 영어를 영어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을 영문법의 이해라고 생각해요.

문법의 필요성에 대해서 조금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고 필수 외국어로 불어를 배웠는데, 기본적인 동사변화라거나 기초 문법 이외의 불문법을 거의 기억하지 못합니다. 상세한 문법은 무시하고 단어를 찾아서 외우고 읽는 양을 늘렸죠. 이건 제가 기본적으로 영어를 어느정도 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방법이었어요. 이렇게 문법적 체계를 상세하게 따지거나 배우지 않고 언어를 자주 접해서 익히는 공부 방법을 영어권에서는 이멀젼(immersion; 몰두법)이라고 불러요. 제가 불어를 공부한 고등학교 시절 이래, 제가 만난 모든 불어 선생님들이 이멀젼이야말로 언어를 배우는데 최상의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사실 영어권 화자가 불어를 배운다면 이건 맞는 말입니다. 한국어 화자가 일본어를 배울 때에도 대체로 들어맞는 말이고요. 어느 수준까지 느는 속도를 비교하자면, 영어-유럽어나 한국어-일본어는 상성이 매우 좋은 편이에요. 세세한 문법 좀 몰라도 대충 아무렇게나 열심히 말하고 많이 들으면서 자주 접하면 언어의 구조나 단어들이 비슷하기 때문에 대강 B1, B2 정도의 수준까지는 금세 늘겁니다. 물론 고급단계인 C1, C2로 넘어가면 이 부분도 역시 공부가 병행되어야겠지만요. 따라서 비영어권 유럽국가의 성인이 영어권 국가에 이민가서 10년간 살았을 때 느는 영어의 수준과, 한국어나 일본어를 모국어로 하는 성인이 영어권 국가에 이민가서 같은 생활을 하며 10년을 살았을 때 두 사람이 비슷한 언어재능을 가졌다면 늘어난 영어수준은 결코 같을 수 없습니다. 반대로 영어나 기타 유럽어를 모국어로 하는 성인이 일본에 가서 10년간 살았을 때와 한국어 화자가 일본에서 10년을 살았을 때의 일본어 실력도 마찬가지예요. 애석하게도 제 불어 선생님들 중 동아시아 언어를 배운 분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아마 배워본 분이 계셨다면 이멀젼이 언어를 배우는 방법 중 최고라는 소리는 하기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처럼 모국어에 따라 특정 언어의 습득능력에 차이가 나는 것은 언어에도 부모형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영어를 포함한 유럽어는 대부분 인도-유럽어족에 속하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영어권 화자의 경우 이멀젼으로 유럽언어를 익히는 것이 유리합니다. 말하자면 영어와 기타 유럽어는 형제관계고, 그들의 부모는 인도-유럽어족인거죠. 이들은 엄청난 대가족입니다. 크게 동인도유럽어족과 서인도유럽어족으로 나뉘며, 사멸된 어족을 제외해도 여덟가지의 하위분류로 나뉘어요. 영어는 계통적으로 게르만어군이며 11세기 노르만의 영국 침공으로 인해 로망스어군과도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게르만어군의 대표적인 언어는 독일어고, 로망스어군의 대표적인 언어로는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가 있죠. 친형제거나, 사촌이거나, 어쨌거나 이들은 전부 한 부모 아래에서 갈라져나온 형제언어들입니다.

한국어와 일본어가 기타 동아시아 언어들에 비하면 공통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인도-유럽어족과 같은 긴밀한 관계는 아니에요. 한국어는 고립어족이고, 일본어족과 언어동조대(Sprachbund; 또는 언어수렴 Language Convergence; 지리적 인접성이나 오랜 상호 저촉으로 인해 언어가 닮아간 현상)에 의해 비슷해졌다는 견해가 현재 학계에서 가장 지배적입니다. 지금 20~30대이신 분들께서는 한국어와 일본어가 우랄-알타이어족에 속한다고 학창시절 배우셨을테지만, 이는 현재 언어학계에서 거의 설득을 잃은 이론입니다. 한국어는 아직까지 학자들이 아무리 뒤져도 부모도 형제도 찾아낼 수 없었던 언어예요. 일본어는 거의 사멸한 류큐어라는 형제를 간신히 찾아내서 일본어족이라고 묶여있긴 하지만 역시 부모를 찾을 수는 없었고요. 둘이 이웃인만큼 어느 정도의 닮은 점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알타이어족라는 가설상의 부모어족을 등장시켜서 혹시 출생의 비밀이 있는게 아닌가 학자들이 의심했지만 안타깝게도 둘 다 고아라고 알려졌습니다. 이것이 한국어 화자로서 외국어의 습득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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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한국어를 다 잘 할까요? 그렇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테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저는 후자의 사람입니다. 언어를 '잘' 한다는 것의 기준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라, 이 부분에 대해서 먼저 짚고 넘어갈까 합니다. 저는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한국어로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나, 그들 모두가 이문구의 관촌수필을 무리없이 술술 읽을 수 있는 독해능력이 있다고 믿지 않고, 대형 신문사의 사설을 쓸 수 있을만큼의 글쓰기 실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하이, 오늘 뭐해?"같은 수준의 언어만을 일상적으로 구사하고 충분한 읽기와 쓰기를 하지 않은 한국인이 현 국가 재정정책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대해 자료를 아무리 많이 준들 그에 대한 자신의 견해에 대해 글을 쓰거나 토론할 정도의 말하기 능력을 갖고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단순한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토론을 위한 독해 능력과 글쓰기 능력, 말하기 능력 자체가 부족한 겁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모든 미국인들이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영어는 언어이기 때문에 소통이 중요하다, 소통을 하는 영어만이 살아있는 언어이기에 문법과 독해를 그만하고 말하기에 집중해야한다" 같은 말을 들어보셨을 거예요. 저는 그에 동의하지 못합니다. 이전에 이런 글을 본 적이 있어요. 해외여행을 자주 하다보면 영어가 늘 것 같아서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정작 는 것은 바디랭귀지였다고요. 소통은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읽기와 쓰기가 기초로 받쳐주지 못하는 낮은 수준의 영어실력에서는 바디랭귀지를 연마하는 쪽이 소통 그 자체로써는 더 효율적이에요. 일부 제스처를 제외한다면 언어와 국적을 초월한 유일한 소통방법은 바디랭귀지일겁니다. 언어라는 것은 절대로 단순한 소통이 될 수 없어요. 언어는 '수준높은 소통'이며, 한 언어 안에서도 그 수준은 천차만별로 갈릴 수 있죠.

그러면 자신의 수준은 어디에 위치해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수준을 나누는 기준은 다양하겠지만, 저는 본인이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를 어떤 난이도 순으로 어렵게 느끼느냐로 가장 쉽게 알 수 있다고 생각해요. 편의상 아래 여섯가지의 언어수준을 유럽언어공통기준(CEFR)에 따라 표기했지만 제 기준점이 반드시 CEFR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므로 다소 내용상의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첫번째, A1. 일단 바디랭귀지와 조각 단어조합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어요. 여행을 갔을 때 그 나라 언어를 잘 하지 못해도, 슈퍼에서 사과를 사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거든요. 사과를 가리키고 "사다"라고 말한다거나 "얼마" "사과" 등 대충 두세단어의 조합만으로도 의사소통은 가능하죠. 러시아나 그리스에 가서 글자 못읽는다고 해도 사과 찾아서 계산대에 올려놓으면 가격은 아라비아 숫자로 나오고요. 식당에 간다고 해도 "추천"이라거나 "이거" "1번" 정도의 단어면 충분히 음식을 주문할 수 있습니다. 아주 기초적인 200~300개 내외의 단어만으로도 말을 하고 소통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아요. 소통을 목적으로 한 말하기는 그래서 난이도가 그렇게 높지 않습니다. 단지 이 경우 듣기에는 상당한 애로사항이 있을 수 있어요. 읽기나 쓰기는 엄두도 못내고. 그래서 이 정도의 낮은 언어수준의 경우 난이도는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순으로 어렵습니다.

두번째, A2. 그리고 수준을 조금 올리면, 이건 읽고 쓰는 공부를 소홀히 한 이민자들이나 유학생들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에요. 일상대화는 대체로 잘 할 수 있는데 고급수준의 대화를 힘들어하는 사람들이죠. 일상대화의 난이도는 위의 여행용 영어보다 조금 더 위에 위치하긴 하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아주 단순한 어휘만으로도 일상대화는 가능해요. 실제로 한국 중학교 교과서 수준의 어휘력과 문법만 갖추고 있으면 생활에서 언어를 자주 접하는 공부법(immersion)을 도입할 때 문법 좀 틀리고 한정된 어휘만으로도 일상을 영위하는 것에 크게 문제는 없습니다. 이멀젼의 가장 큰 장점은 아마 듣기일거예요. 강제적으로 듣는 양이 많아지게 되다보니 이 수준에서는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쉬울 가능성이 높아요. 난이도는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순으로 어렵죠.

세번째, B1. 그 다음 수준은 영어 공부를 좀 한 외국인의 영어수준이에요. 특히 학술적이거나 특정 직종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집중적으로 해 온 케이스라면 읽기가 가장 쉬울 수밖에 없죠. 이런 케이스의 사람들은 쓰기도 그렇게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요. 일할 때 영어로 된 이메일이나 서류를 작성해야하는 경우라면 특히나 그렇죠. 하지만 듣는 것에는 노출되는 환경이 적기 때문에 자신이 그다지 없는 편이고, 듣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말을 하는 것은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가 그 공부법을 적용하는 대상으로 삼은 것이 이 레벨의 사람들입니다. 한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이 부류에 속할 확률이 가장 높겠죠. 이 사람들은 난이도는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 순으로 어렵다고 여깁니다.

네번째, B2. 다음은 영어공부를 꽤 많이 한 외국인의 수준입니다. 바로 전단계에 비해서 듣고 말하는 수준도 어느정도 올라가있는 사람들이에요. 이 사람들이 가장 어렵다고 느끼는 건 다름아닌 쓰기입니다. 쓰기는 언어레벨이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어렵다고 느낄 수밖에 없어요. 말하는 것에 더이상 두려움이 없는 사람들은 말하기 같은 건 문법에 다소 틀리게 말한다해도 기록이 남지않고 생활을 하다보면 실제로 틀리게 말하는 원어민도 많으니 괜찮다고 생각하게 돼요. 하지만 글이라는 건 정말로 한 사람의 언어능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부분이고 객관적으로 비교하기도 쉽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글쓰기에 집착하는 단계입니다. 이 사람들이 체감하는 난이도는 읽기, 듣기, 말하기, 쓰기 순이죠.

다섯번째, C1. 마지막으로 영어공부를 상당히 많이한 외국인. 제가 앞으로 말씀드릴 공부법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건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이 레벨에 도달하는 거예요. 시간을 들이면 쓰는 것까지도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고 느끼게 된 사람들이라면 아이러니하게 들리겠지만 나름대로 쉽다고 느꼈던 말하기가 실제로는 아주 어렵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일상대화를 위한 말하기는 여전히 별 것 아니라고 여기지만, 생활하면서 지적인 대화를 한다거나 업무상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한다거나 클라이언트와 업무에 대한 대화를 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운 부분이라고 깨닫게 되는거죠. 특정 상황에서 적절한 말을 한다는 것은 사실 모국어로도 아주 어려운 일이거든요. 단순히 언어적인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인 부분까지도 포함해서 말이에요. 위에서는 조금 어렵고 딱딱한 상황을 예시로 들었지만 사실 이 부분은 또래집단에서 쓰이는 슬랭이라거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관용어들까지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수준의 사람들에게 영어의 난이도는 읽기, 듣기, 쓰기, 말하기 순으로 어렵다고 느끼죠.

여섯번째, C2. 사실 다섯번째 집단보다 위의 수준에 있는 사람들은 영어 원어민 중에서도 영어를 굉장히 잘하는 사람밖에 없어요. 출판사의 편집자로 일할 수 있을 정도라거나 신문의 사설을 쓸 수 있는 사람, 강의를 매우 잘하는 교수 등이 이 부류에 속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이 사람들을 쫒아가기 위해 외국인이 언어수준을 올리는 노력을 하는 건 노력대비 효율이 떨어진다고 보기 때문에, 목표로하는 영어수준이 이 단계라면 아주 많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원어민의 영어 수준은 2~3에 걸쳐있고, 4~5만 제대로 할 수 있는 외국인이라도 대부분의 원어민보다 영어수준이 높다고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이 수준에서는 난이도의 차가 거의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수준의 영어실력을 가지고 있나요? 저는 학업과 업무상의 필요로 구사해야하는 영어수준을 최소 B1 이상으로 보고, 그 이하는 취미 수준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해외여행을 다니는데 문제없을 정도의 영어를 하고, 가끔 외국인들이랑 만나면 영어로 즐겁게 떠드는 수준을 원한다면 대개 A1에서 A2 정도면 충분하고, 재밌는 영어책 설렁설렁 넘기면서 볼 수 있는 수준을 원한다면 B1 정도면 될거예요. 취미로 영어공부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다룰 예정이지만, 제 공부방법에 관한 글은 앞서 말씀드렸듯이 기본적으로 학업과 업무상의 이유로 공부하는 분들께 좀 더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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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공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여러분 각자에게는 다양한 답이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수준의 언어를 원하는가'를 인지하는 것입니다. 영어를 잘하고 싶다고 말씀하는 많은 분들에게 저는 항상 같은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당신에게 영어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냥 영어를 잘하고 싶어요."

안타깝게도 제가 위의 질문에 가장 많이 들은 답입니다. 저는 이런 분들에게 도움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분들은 다음과 같이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영어가 어떤 것인지 가능한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분들입니다.

“미국이나 영국 드라마를 자막없이 보고싶어요.”
“토익 점수를 높게 받고 싶어요.”
“외국인 친구와 대화하고 싶어요.”
"해외기업에 취업을 하고싶어요."
“회사에서 영어로 프레젠테이션할 실력을 갖추고 싶어요.”
“논문을 쓰는 것에 지장이 없는 영어실력을 갖추고 싶어요.”
“한달간 미국을 여행할 계획인데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월스트리트 저널 비즈니스 섹션을 읽을 수 있는 수준이었으면 좋겠어요.”
“취미로 가볍게 영어 베스트셀러를 읽을 수 있는 수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목적을 정하지 않은 공부는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습니다. 한달 뒤에 토익시험을 쳐야하는 사람과, 일주일에 두번씩 회의에 들어가서 영어로 브리핑이나 프레젠테이션을 해야하는 사람은 결코 공부 방법이 같을 수 없습니다. 토익시험을 잘 치고 싶은 분은 토익 문제집을 사서 문제유형을 공부하셔야하고, 회의에 들어가셔야 하는 분은 필요한 내용을 영어로 정리하여 스크립트를 쓰고 외우는 공부를 하셔야합니다. 토익을 잘 치고 싶은 분이 영어 소설을 많이 읽는 것은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는 모르나 효용성이 매우 떨어집니다. 회의에 들어가셔서 영어로 프레젠테이션 해야하는 분이 회화학원을 다니며 인삿말을 공부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입니다. 영어를 잘 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은 자신의 목적에 따른 목표의 한정화입니다.

한 개인의 언어실력은 살아온 문화와 방식에 비례합니다. 저는 영어를 그다지 잘하는 편은 아닙니다. 고작해야 영어로 학업하고 일하는데 크게 문제가 없는 수준의 영어를 할 수 있어요. 아마도 이곳에 저보다 영어를 잘하시는 분들은 많겠죠. 그에 반해 제 동생은 아마도 미국인의 상위 3% 이내의 영어실력을 가진 사람일겁니다. 업무상으로도 수준 높은 영어를 써야하는 직종에 종사하고 있고, 지금 당장 영어권 출판사에서 교정을 하거나 잡지의 칼럼을 쓰는 것도 문제없는 수준의 영어를 할 수 있어요. 베어울프에서 캔터베리 이야기와 셰익스피어까지, 심지어 사회적인 속어와 국가별 속어조차 거의 대부분 이해하거나 약간의 훈련만으로도 따라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일반인들에게 이 정도의 수준의 영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영어의 수준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자신만의 컨텐츠를 갈고닦는 쪽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믿고요.

저는 개인이 여러 개의 언어를 함으로서 얻을 수 있는 가치를 종합적으로 고려할때 언어의 손익분기점은 모국어포함 2.5개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영어를 포함한 2개 국어 이상을 유럽언어공통기준(CEFR) C1 이상의 레벨으로 구사한다는 건 한국어 화자에게 매우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UN같은 국제기구에서 괜히 3개 국어 이상만 해도 고용하는게 아닙니다. 구사할 수 있는 모든 언어의 수준차가 거의 없이 세가지를 C2의 레벨로 구사한다는건 일반인이 해내기 어렵거든요. 물론 이런 케이스는 언어 자체가 컨텐츠인 경우죠.

저는 근본적으로 영어란 도구에 불과하다고 보는 사람이고, 기본적으로 제가 앞으로 여기서 제시할 방법은 학업과 회사업무를 위한 영어실력을 쌓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방법을 따른다고 해서 저는 제 글을 읽는 분들이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거나 찰스 디킨스나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술술 읽을 수 있을거라고 기대하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이렇게 공부해서 얻어지는 언어가 시대에 따라 계속해서 바뀌는 속어과 같은 기타 문화적 요소까지 커버할 수는 없고요.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업무와 학업을 위한 영어만큼은 원어민에 비해 뒤쳐지지 않을만큼의 수준을 구사할 수 있도록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비영어권 외국인이 추구해야할 영어수준을 학업과 업무에 있어서 유창한 수준으로 한정하고 있거든요. 그보다 높은 언어실력이 살면서 그렇게 필요하다고 생각해보지도 않았고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자신만의 컨텐츠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어느 수준의 영어를 구사해야 그 컨텐츠를 최대한으로 활용 가능할까요? 저는 공부를 시작하기 전, 여러분이 이 부분에 대해서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계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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